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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로베르토 쥬코』
2024. 11. 7.
역자: 유효숙
출판사: 연극과인간
― 기억에 남는 구절
마치 형사님 그림자처럼 걷더군요. 그림자가 정오의 순간처럼 줄어들고, 그 남자는 점점 더 구부러진 형사님 등 가까이 다가가서, 갑자기 옷에서 긴 단검을 꺼내더니 그 불쌍한 형사님 등에 꽂는 거예요. 형사님은 멈춰 섰지요. 뒤돌아보지 않으셨어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형사님이,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내신 것처럼 머리를 부드럽게 좌우로 흔드셨어요.
수컷이란 지구 위에 있는 역겨운 동물들 중에 제일 역겨운 동물이야. 수컷한테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냄새가 나. 수챗구멍 속의 쥐, 진흙 속의 돼지, 시체가 썩어 가는 연못의 냄새. (사이) 수컷이란 더러워. 남자들은 씻지를 않아. 그들은 오물과 분비물의 역겨운 액체들을 몸 안에 모아 두고, 마치 무슨 소중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건드리지도 않아. 남자들끼리 서로 냄새를 못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똑같은 냄새를 지녔기 때문이야. 그래서 항상 남자들끼리만 어울리고 창녀를 찾아가는 거야. 창녀들은 돈을 받고 그 냄새를 참으니까.
(외치며) 떨어졌다!



해체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찾다 읽은 희곡이다. 희곡의 제목인 '로베르토 쥬코'는 희곡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쥬코'의 키워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연쇄 살인범 2) 교정기관 탈주범 3) 성자적/영웅적 이미지 소유자. '쥬코'는 저자 베르나르-마리 콜테스가 뉴스로 접한 이탈리아의 실제 연쇄 살인범 로베르토 수코를 모델로 하여 쓰인 인물로, 인격성이 완전히 결여된 수준의 사이코패스 성격 장애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쥬코'에게 성자적 이미지를 부여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이코패스, 살인범, 범죄자 여타에 "영웅" 칭호를 달아주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인 바 그다지 기껍지는 않았던 듯하다. (악인에게 억지로 사연 있는 서사를 부여하는 것 역시 선호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또 '쥬코'는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고독한 개인을 표상하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고독한 현대의 개인을 굳이 살인을 일삼는 인격 장애자로 설정하여 풀어낼 이유는 없어 보이며, 그저 뉴스 속 태양을 등지고 자살하는 로베르토 수코의 모습에 감명받은 저자가 본인의 욕망대로, 욕심껏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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